■ 삼성·금융공기업 필기시험
22일 서울 강남구 단대부고에서 열린 삼성 직무적성검사(GSAT)를 마친 취업준비생들이 시험을 마친 뒤 고사장을 나서고 있다. [한주형 기자]
지난주 말 삼성전자와 금융공기업 등 취업준비생들의 `1순위 희망 기업` 공채 필기시험이 한꺼번에 진행됐다.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 등 최첨단 트렌드 변화는 물론이고 인기 장편소설 `82년생 김지영`이나 박지원의 `열하일기`, 네덜란드병, 넛지 효과, 그린슈머 등 인문·경제 분야를 넘나드는 문제가 다양하게 출제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국가공인 경제경영이해력인증 시험인 매경TEST에 출제된 문제와 유사한 문항이 다수 눈에 띄었다.
22일 삼성그룹 대졸 신입사원 공개채용을 위한 직무적성검사(GSAT)가 서울 부산 대구 대전 광주 등 국내 5개 지역과 뉴저지주 뉴어크,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 등 미국 2개 지역에서 동시에 진행됐다. 이번 시험은 삼성이 그룹 공개채용을 폐지한 이후 첫 시험이다. 계열사마다 채용 일정은 개별 진행하고 있지만 평가의 난도와 문항의 보안 유지를 위해 GSAT는 그대로 유지했다. 응시자들은 언어논리·수리논리·추리·시각적 사고·상식 등 5개 영역에서 출제된 160개의 문항을 140분간 풀었다. 이번 평가에서는 인공지능, 머신러닝, 로보어드바이저, IoT 등에 대한 상식을 묻는 문제가 대거 출제됐다. 프리미엄 TV에 적용된 QLED 기술과 빛의 3원색을 연계해 묻는 문제도 나왔다. 역사 분야에서는 `홍길동전`이나 `열하일기` 등 저자와 관련한 문항도 나왔고, 환율 변동과 해외여행 사이의 상관관계 등 경제 기초지식을 묻는 문제도 눈길을 끌었다. 최근 계란 파동 등으로 화학물질에 대한 공포가 확산한 것을 반영하듯 `그린슈머`(환경 친화 제품을 쓰려는 소비자)에 대한 문항도 출제됐다.
하루 앞선 지난 21일은 9개 금융공기업이 동시에 공채 필기시험을 치른 이른바 `금융권 A매치 데이`였다.
산업은행 논술 문제에는 노벨상 수상자 작품이 다수 등장했다. `직장 내에서 발생할 수 있는 남녀·세대 간 갈등에 대한 넛지(nudge)식 대응 방안`을 묻는 문제도 나왔다.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라는 뜻의 영어 단어인 `넛지`는 올해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리처드 세일러 시카고대 교수가 주장한 개념이다. 산업은행은 또 올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와 올해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조남주 작가의 장편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참고지문으로 제시했다. 무역보험공사는 `네덜란드병(Dutch disease)`을 묻는 문제를 출제해 눈길을 끌었다. 네덜란드병은 한 국가가 석유나 가스 등 천연자원 수출에 의존해 단기 호황을 누릴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이에 따른 물가 상승·환율 하락으로 산업 경쟁력이 약화돼 경기 침체를 겪는 현상을 말한다. 네덜란드가 1950년대 말 자국 내 상당량의 천연가스를 발견하고 수출해 큰돈을 벌었지만 이후 불황을 경험한 데서 착안한 개념이다.
경제·경영지식과 관련해 지원자에게 가계부채, 디지털금융 등 최근 부상한 금융권 화두에 대한 견해를 묻는 문제도 대거 출제됐다. 기업은행은 `트럼프노믹스가 세계 경제와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 `최저임금이 국내 경제와 산업에 미치는 영향` `디지털 금융의 발전 방향`이라는 세 주제 중 하나를 선택해 논술하는 문제를 냈다.
금융감독원은 경제학 전공시험에서 가계부채가 경제 안정에 미치는 영향, 가계부채가 시스템리스크로 작동하는 기제, 한계 차주 관리 방안, 한계기업 관리 방안, 4차 산업혁명에 따른 금융산업의 기대효과와 금감원의 대응 방향을 논술에서 물었다. 한국은행은 전공시험으로 `인구 고령화와 통화 정책의 관계`(경제학), `최저임금 인상 이슈에 대한 견해`(경영학) 등을 출제해 응시자가 장기적·구조적 대응을 얼마나 고민했는지를 평가하기도 했다. 올해도 이미 매경TEST에 출제된 것과 비슷한 문제가 다수 나왔다. 예를 들어 삼성 GSAT에서 가장 많은 문항 수를 차지하는 직무상식 영역에서 나온 인공지능, 머신러닝, 로보어드바이저, 사물인터넷 등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문항은 최근 매경테스트에서 자주 출제되는 시사 문제들과 유사했다. 매경TEST 사무국 관계자는 "GSAT 직무상식 영역 가운데 인플레이션에 따른 화폐가치의 변화, 총부채상환비율(DTI), 환율에 대해 묻는 문제들은 매경TEST에서 올 들어서만 3~4차례 이상 출제된 경제·금융 분야의 단골 주제로, 매경TEST로 미리 해당 영역을 준비한 수험생들은 쉽게 문제를 풀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동인 기자 / 김종훈 기자 / 최병일 경제경영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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