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근로시간 단축 후폭풍 ⑥ ◆
일과 삶은 경쟁 관계가 아닌 하나의 원형(서클)과 같이 서로 영향을 준다는 뜻의 `워라클(Work-Life-Circle)`이라는 개념은 실리콘밸리에서는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실리콘밸리는 우버·에어비앤비 등 공유경제 기업들의 본사가 위치한 데다 관련 서비스도 가장 먼저 시작된 지역이다. 기업이나 개인에게 필요한 일을 하고 돈을 받는 일자리를 말하는 `긱 이코노미(Gig Economy)`의 성장이 실리콘밸리에 미친 영향도 크다.
긱은 1920년대 미국 재즈 공연장 주변에서 필요할 때마다 연주자를 구해서 단기간으로 공연 계약을 맺던 것을 뜻하는 말에서 유래했다. 비정규직이지만 형식적으로는 개인사업자이고 계약사업주에게 노동을 제공하고 대가를 받는 `독립노동자`로 구분된다.
긱 이코노미는 직업 안정성은 떨어지지만 필요한 만큼 일하고 업무시간을 스스로 조정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나인 투 파이브(9 to 5)`가 상징하는 전통적인 의미의 노동시간에 대한 개념이 붕괴되는 데 기폭제가 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긱 이코노미가 확산하고 있는 이유는 일한 만큼 버는 대신 스스로 업무시간을 통제할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 우버 드라이버들은 가장 큰 장점으로 `일하고 싶을 때 일할 수 있는 유연한 근무시간`을 첫 손가락에 꼽는다.
뉴욕대 경제학자 아룬 순다라라잔 교수는 "긱 경제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자율권이 확대되면 워크·라이프의 균형을 더 잘 성취할 수 있을 것"이라며 긱 경제의 장점을 강조한 바 있다.
근무시간이 유연한 덕분에 생산성이 높다는 것도 장점이다. 실제로 긱 노동자들의 시간당 임금은 전체 노동자 평균과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다고 알려져 있다. 폴 오이어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교수 연구에 따르면 긱 노동자의 연봉은 전체 평균보다 6% 정도 낮았지만 시간당 임금을 따져보면 전체 평균보다 15% 높았다.
유연한 근무시간은 여성 전문직이나 엔지니어에게도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육아와 일을 병행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긱 이코노미가 수익과 시간을 동시에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장점 덕분에 긱 이코노미와 긱 노동자 범위도 넓어지고 있다. 차량(우버·리프트)이나 숙박(에어비앤비) 외에도 집안일, 사무실 청소, 전문 엔지니어, 변호사 등 다양한 직종으로 확산돼 있다. 현재 미국 노동자의 약 35%는 직간접적인 긱 노동자로 분류될 정도다.
긱 이코노미 확산은 고용의 질과 직업 안정성을 낮추는 단점이 있다. 긱 이코노미로 인해 정규직은 줄고 프리랜서와 독립 계약자 등 다양한 고용 형태가 늘어나는 것은 또 다른 사회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 <용어설명>
▷ 긱 이코노미 : 기업이 필요에 따라 단기 계약직을 고용해 일을 맡기는 경제 형태. `긱(Gig)`은 일시적인 일을 뜻한다. 기존 노동시장은 기업이 정규직 직원을 채용해 고객에게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형태였다면 긱 경제에서는 기업이 그때그때 발생하는 수요에 따라 단기적으로 계약을 맺는다.
[실리콘밸리 = 손재권 특파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